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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백과

일상에서 쓰고있는 수리체계 십진법의 발명과 전파

by 하나이글스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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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진법

0에서 9까지 의 숫자를 이용해 수를 쓰는 한 방법입니다. 십진법에서는 0, 1, 2, 3, 4, 5, 6, 7, 8, 9의 단 10개의 숫자를 이용해 아주 큰 수에서 아주 작은 분수에 이르기까지 어떤 수라도 쓸 수가 있습니다. 아 숫자들의 값은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832와 238에서 2라는 숫자가 나타내는 값은 서로 다릅니다. 그것은 두 수에서 2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수에서 위치하는 자리에 따라 숫자의 값이 달라 지기 때문에 십진법을 자리의 값 체계라고 하기도 합니다. 십진법이란 이름은 10을 단위로 하여 자리가 바뀌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십진법으로 쓴 수에서 각 자리는 그 오른쪽의 자리보다 10배 더 큰 값을 가집니다. 따라서 더 왼쪽에 있는 숫자는 똑같은 숫자라도 오른쪽에 있는 숫자보다 더 큰 값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238에서의 2는 832에서의 2보다 훨씬 큰 값을 가집니다. 십진법은 인도-아라비아 체계라고도 합니다. 왜냐 하면 2천여 년 전에 인도의 수학자들이 십진법을 만들어냈고, 8세기에 아랍인들이 인도의 일부 지방을 정복하면서 십진법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뒤 아랍인들은 십진법을 중동, 아프리카 북부, 에스파냐 등에 전파시켰습니다.

 

숫자조각

발명

십진법은 인도에서 만들었지만,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기원전 250년경에 10을 기본으로 한 수체계가 산스크리트어를 쓰는 데 사용된 글자인 범어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아라비아 숫자의 1, 2, 3, 4, 5, 6, 7, 8, 9는 하나부터 아홉까지를 나타내는 범어 기호를 기초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범어로 나타낸 십진법에서는 10, 20, 30, 40, 50, 60, 70, 80, 90, 100, 1000을 나타내는 특수한 기호도 함께 사용했습니다. 서기 595년경에 나머지 모든 기호는 사라지고 모든 수는 1에서 9까지 나타내는 아홉 개의 기호만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호가 놓여 있는 자리에 따라 그 기호의 값이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의 값 체계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만약 어떤 자리가 비어 있다면,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를 사용해야만 다른 수들의 정확한 자리의 값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 876년에 그러한 새로운 기호를 처음으로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 기호를 오늘날 영(0)이라고 부릅니다. 중앙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에서도 자리의 값 체계를 발명해 사용했는데, 이들은 서기 300년 이전에 이미 0을 사용했습니다.

 

전파

8세기에 아랍인들은 인도의 일부를 정복하여 십진법을 배운 뒤, 300년 동안 중동에서 아프리카 북부를 거쳐 에스파냐까지 십진법을 전파했습니다. 교황인 실베스터 2세(1000년경)와 이탈리아의 수학자인 피보나치(1202년)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 십진법을 소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책으로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지는 못했습니다. 15세기 중반에 인쇄기가 발명된 뒤에야 십진법을  설명한 몇 권의 산술책이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십진법이 유럽에서 급속하게 퍼진 것은, 그 당시 유럽에서 대부분 사용하고 있던 로마 숫자보다 십진법이 더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로마 숫자로 계산하는 것은 몹시 번거로운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산판이나 계산천 위에 수직선을 그은 뒤 그 위에 작은 금속 조각들을 놓아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십진법을 사용하면 십진법이 지닌 자리의 값 특성으로 펜과 종이만 있으면 간단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속 조각이나 계산판 같은 것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고, 수를 적는 데 필요한 공간도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낼 필요 없이 얼마든지 큰 수나 1보다 작은 수도 적을 수 있고,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1보다 작은 수의 사용

소수는 유럽에 소개되기 몇 세기 전부터 중국에서 쓰였으며, 15세기 초에는 아랍의 천문학자들도 소수를 사용했습니다. 유럽의 천문학자와 수학자 가운데에도 소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인이나 일반인이 소수를 처음으로 사용한 기록은 1585년에 네덜란드에서 나온 소책자에서 나타났습니다. 영국의 남작으로 수학을 연구한 네이피어는 1617년에 소수들을 쉽게 적는 방법을 만들어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8세기 말에 프랑스는 십진법을 기초로 한 미터법과 새로운 화폐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의 도입으로 많은 사람들이 소수를 사용했습니다. 소수의 중요성은 1970년대 후반에 십진법을 사용하는 전자계산기가 값싸게 보급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따라서 전에는 분수를 사용하여 풀던 문제들을 이제는 전자계산기로 아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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